근대일본의 역사 과정에서 일본의 아시아인식은 일본의 대외 정책을 규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근대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기본 인식의 구조는 '인종'과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인종적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서 저 너머 백인의 문명세계를 동경하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 아시아 주둔 미군 규모가 현재와 같은 10만명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전진 배치되어야 한다고 3차 보고서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10만군 전진배치를 통해서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미국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정책에 대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를 확보하는 형태로서 팽창해야만 일본이라는 국가가 공고화될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유기치의 사상적 밑거름이 되는 문명론에 대해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토마스 버클(Thomas Buckle)과 프랑소와 기조(Francois Guizot)의 영향을 받은 유기치는 『문명
일본 출현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페리함대의 파문은 날이 갈수록 크게 확대되었는데 특히 탑재하고 있던 대포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나카쓰번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양식 포술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는데 외국원서를 읽어야 하는 독해력이 선결 과제였다. 당시 일
일본 출현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페리함대의 파문은 날이 갈수록 크게 확대되었는데 특히 탑재하고 있던 대포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나카쓰번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양식 포술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는데 외국원서를 읽어야 하는 독해력이 선결 과제였다. 당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