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을 만들어냈다.
대포적인 비디오가수로는 핑크레이디가 있다.
그리고 60년대 비틀즈의 영향으로 잠깐 반짝하고 70년대 와서 “영상물”이라는 거대한 빙산에 부딪힌 록큰롤, 포크등의 장르는 이런 아이돌그룹이나 엔카에 크게 밀려나서 사실상 대중들의 관심 밖에 내버려졌고, 이들
그룹 H.O.T의 공연에 열광하는 청소년 팬들을 보도하면서 ‘한국 문화의 유행’이라는 의미로 한류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한류라는 단어 자체는 그보다 더 일찍 사용되었다. 1996년부터 중국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소개해오던 김윤호 사장은 1998년 5월 중국 최초의 공식 한국음반인 H.O.T 앨범
개방’을 추진하는 방안으로 나가게 되었고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에서도 놀라고 있고 주목받고 있다.
경제 성장에 따라 문화적인 소비(대중 문화 등을 포함) 또한 늘어가게 되었고 소비자 수요는 늘어나는 데 이를 수용할 문화적인 콘텐츠가 부족한게 사실이었다. 이 틈을 타 미국과 일본
계산대 바로 옆에 놓고 판매하였다고 한다. 또한 의류매장 2000여 명의 직원들에게 원더걸스에 대한 교육을 선행하여 고객들의 궁금증에 즉각 답해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새로운 것에 보다 더 개방적인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이 마케팅은 일주일에 3만 4백장 판매라는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대중가요에, 유신 이후에는 민주화나 사회 비판적 노래에 금지곡 딱지가 붙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70년대 많은 금지곡이 가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듣는 이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나왔다는 것. 송창식의 ‘왜 불러’는 사회저항 가요가 전혀 아님에도 경찰의 장발 단속에 저항하고 정부 정책에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