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전쟁 때마다 국민에게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 침투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였다. 또 전몰자들은 천황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없이 신(神)이 되어, 국민의 예배를 받았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터
참배' 동북아 역사재단 2008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공적인가 사적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1975년 미키다케오(三木武夫)수상이 사적인 참배임을 명시하면서부터 그전까지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었다.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국제적인 문제화 된 것은 A급전범의 합사이후였다.
2.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문제되는 이유
① A급전범 합사와 유슈칸(遊就館)
야스쿠니 신사는 1978년 10월에 A급전범 14명을 비공개 합사(合祀)하였다. 이 사실은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보도 되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아시아 각국이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A급전범이란 태평양 전쟁의
일본의 인사들이 신사참배 하는 것에 대하여 논란이 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의 신사참배는 1985년 일본의 전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공식적으로 참배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당시 신사에는 1978년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비롯하여 A급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어있었
Ⅰ. 개요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보를 고집스럽게 이어나갈 모양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의 잇단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위헌으로 판단한 후쿠오카 지방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참배의 성격을 `사적인 것'이라고 강변하며 참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