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박제순. 송병준 이하 76명에게 논공행상으로, 혹은 회유를 위해서 일제는 귀족의 신분을 배급했다. 후작(Marquis) 6명, 백작(Count) 3명, 자작(Viscount) 22명, 남작(Baron) 45명인데 김석진 등 8명이 남작의 수령을 거절했다. 이후 1920년대로 들면서는 이완용이 백작에서 후작으로, 고희경과 송병준이 자작에
이완용·박제순·송병준 이하 76명에게 논공행상으로 ,혹은 회유를 위해서 일제는 귀족의 신분을 배급했다. 후작(Marquis) 6명, 백작(Count) 3명, 자작(Viscount) 22명, 남작(Baron) 45명인데 김석진 등 8명이 남작의 수령을 거절했다. 이후 1920년대로 들면서는 이완용이 백작에서 후작으로, 고희경과 송병준이 자작에
친일파청산에 기준이 변화하는데 따른 것이라 본다. 이 장에서는 친일파의 개념과 일제의 친일파 육성정책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2. 친일파란?한국사회에서 친일파란 단지 일본에 우호적이고, 일본문화를 찬양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파행적인 한국근현대사에서 그
청산하는 반제 반봉건이 가장 중심적 과제였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역사학을 제국주의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왜곡하기 시작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다윈의 사회 진화론으로 발전시켜 제국주의시대의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를 합리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강자인 제국주의 국가가 약자인 후진국을 합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