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식민지배 전시간을 통해 줄곧 친일파육성에 힘을 기울였는데, 합방 전과 후에 따라 구성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1910년 이전의 친일파에는 크게 세 부류의 집단이 있었다. 첫째, 일진회(一進會)와 같은 적극적인 친일단체로, 일본의 군부와 우익단체들의 조종과 원조에 의해 활동하였다
일제는 친일파와 친일단체를 대량으로 육성하여 민족분열을 자극했다. 그리고 1925년에는 민족운동의 활성화를 누르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제정 공포했다. 게다가 1923년 도쿄 대지진 때는 조선인사냥이 벌어져 6천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문화정치란 결국 무력에 의한
친일파의 양성에 성공하고, 이들을 친일 여론의 조성, 친일단체의 조직, 독립 운동가의 적발과 정보 수집, 독립운동에 대한 파괴 활동, 독립 운동가의 포섭과 변절 설득 등에 광범위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만주침략이 시작되고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일제는 조선을
단체들은 당시 정치투쟁의 선봉에 서있었다. 좌익청년들은 조선청년총동맹<1945,12>에 소속되어 있었고, 우익청년들의 조직은 훨씬 분화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서북청년회는 월남한 반공청년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주로 테러활동을 벌였다.
여성단체는 처음에는 건국부녀동맹에서 좌우가 함께 활동하
친일파들의 행태였다. 친일파를 탄생시킨 계기는 무엇보다도 1876년에 강제로 체결된 -강화도 수호조약- 이었다. 이 조약이후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생긴 개항장을 중심으로 친일세력이 형성되어 일본인들의 경제적 약탈과 침략의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