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창립
임시정부는 독립군 창설 준비를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된 것이어서, 1919년 9월 11일 공포된 통합임시정부의 임시헌법에서 독립전쟁에 대비한 군사제도를 헌법상 정립했으며, 임시정부 수립직후 상해에서 군사학교를 세워 6개월 속성과정으로 1920년 5월 8일 제 1회 졸
임시정부 수립 이후 1945년 임시정부의 환국까지의 업적에서 1932년 윤봉길 의거를 특별히 손꼽는 이유도 그때 국민적 기반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의 업적은 광복군을 설립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고, 외교활동을 강화하여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 받고, 통일전선을 형성했던 중경
한국을 해방시키려했다는 구체적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등 열강의 의사에 종속되어 차일피일 임시정부의 승인을 미루고 광복군의 직접 참전을 통제해 온 중국 국민정부의 방침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 내의 반공주의자 엄항섭 같은 일부 각
Ⅰ. 서론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의 자력에 의해 1940년 9월 17일 총사령부 성립식을 거행하고, 임정의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또한 광복군은 독립군의 인적 맥락을 계승하였다. 즉 총사령 이청천.참모장 이범석.제1지대장 이준식.제2지대장 공진원.제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의 핵심간부들이 1930년대 만
정부(護法政府)에 파견하였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폴란드․소련 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항일독립전쟁은 의열투쟁과 독립군단체지원․광복군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