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의 전투활동과 임시정부의 광복군의 활동은 이미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행위를 한 것과 사실상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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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것이다. 1931년 4월에 대한
임시정부는 3당 聯立內閣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1935년 11월 이래 한국국민당만으로 유지되던 것이 3당 연립내각을 이루어 세력 기반이 확충되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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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의 역사는 1
임시정부가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3·1운동이 끝나가면서 당시의 조선인은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희망과 기대를 걸었다. 그러한 민족적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에 수립된 7개의 임시정부를 1919년 9월 6일 하나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했던 것이다. 그러한 통합정부를 이룩함
3·1운동 직후 국내외 각처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합 과정에서 국내를 기반으로 성립된 한성임시정부를 내세워 임시정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명분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라도, 한성임시정부를 통합의 지표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국내에서 성립된 사실에서 찾아져야 것이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하는 국민당정부를 의식하고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나름대로 후원했으며, 이들에 대한 포섭과 사상공작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중국공산당 막후 실력자의 한사람으로 제2차 국공합작 이후 중경에 파견되었던 주은래는 “중국과 한국관계는 장차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