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사는 본래 서울을 좋아하지 않은데다가 또한 노모를 봉양하고자 하여 간곡히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284년 노모가 죽은후 인각사에 주재하였는데,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284년에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연 뒤 1289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삼국유사(三國遺事)≫만큼 많이 알면서도 ≪삼국유사≫만큼 모르는 책이 없다. 이런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누구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 교육을 통하여 ≪삼국유사≫라는 책의 이름을 들었다. 그 저자가 일연(一然)이라는 사실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시대를 다룬 김부식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충렬왕 7~9년(1281~1283) 사이에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몽고의 침략과 그에 따른 항쟁으로 국토가 피폐하고 지배층의 모순이 극명히 드러나며,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던 때였다. 일연은 불교를 통해, 민족의식의 고취를 통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