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그 동안 정책과정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최고결정자인 대통령, 국회, 정당, 이익집단 및 언론 등의 역할에 대한 연구들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정책설계와 집행의 중심이 되는 해당 정부부처의 역할이나 부처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장관의 역할이나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적었다. 예를 들면,
리더십의 한 특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또 심복정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후에 김대중이 통일부 장관을 배제하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시켜 남북정상회담 교섭을 벌이게 했던 것이나, 국가정보원장을 대북화해정책의 포스트․김정일과 사의의 메신저로 삼았던 것도 이런 의식 및 행태와 다를 바 없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또한 박대통령은 인사관리에서도 이러한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을 보여 주었다. 박대통령은 집권 후 전문성을 갖는 관료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경제 정책 관리 체제를 만들었고 전문지식을 갖춘 관료를 발탁하여 대통령 비서관과 장관‧차관에 임명하였다.
정책 분야에서 우선 이뤄졌다. 1969년 11월 19일 외무장관회담을 개최하여 정치적 공동활동의 가능성을 검증함으로써 이 기구의 창설이 시작되었다. 이는 1954년 8월 프랑스 국가총회에서 거부되었던 유럽정치공동체(EPG)의 외교정책을 추구해 나갔다.
유럽정치협동체는 그 발전과정에 큰 특징이 있다. 이
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63~1967년 민주당·민중당·신민당 대변인, 1968년 신민당 정무위원을 역임하였고, 19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와 겨루었으나 패배하였다. 그 후 미국·일본 등지에서 반체제운동을 주도하다가 1973년 8월 8일 도쿄[東京]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