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리(舍利)의 개념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Kusinagara)에서 열반에 든후, 그지역의 마르타족이 쿠시나가라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려 할 때 주변의 여덟부족이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고 도로나의 중재로 분사리가 시도되어 각지에 여덟 개의 사리탑이 건립되었다. ( 도로나는 사리의 양을 달았던 甁 또
감은사터는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에 있다. 절터의 동쪽 동해바다 가운데 있는 대왕암이 바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30대 문무대왕의 해중릉(海中陵)이며 감은사는 그의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성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다. 문무왕은 재위 한지 21년만인 681년 세상을 떠났는데 늘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장엄(莊嚴)으로 본래 장엄(vyuha)이란 外的인 꾸밈이나 단순한 장식(decoration)의 의미보다는 지혜를 닦아서 그 몸을 꾸미려는 智慧莊嚴이나 혹은 보시, 지계의 덕을 닦아서 그 몸을 꾸미는 복덕장엄 등을 이르는 말로서 內的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개념이다. 일반 감상용의 미술과는 달리 그 종교미
(祇園精舍)에 사원의 건물이나 용도에 따라 불화를 장식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보인다. 주로 약차(藥叉), 본생담(本生談), 불전도(佛傳圖), 해골등의 교훈적이고 장엄한 그림을 그렸을 뿐이며 예배대상인 존상화들은 아직 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아잔타석굴(Ajantn石窟)벽화이다.
Ⅰ. 개요
중국 미술이 과장과 왜곡된 미술 형식을 표방하고, 또 일본 미술이 감정에 차 있고, 틀에 밝힌 미의 세계를 들어내는 것과는 달리, 한국 민족은 고전미를 추구한다고 한다. 중국의 한족과 일본의 장자와 같은 불구를 미의 이상으로 삼지 않고, ‘미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