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식(소동파)의 삶과 문학세계
송은 사의 황금기이며 사를 시와 비슷한 풍격으로 승격시킨 이가 바로 소식인 것이다. 비운의 문호로 표현되어진 그에 대한 소개 때문이었을까, 문학자인 동시에 서가, 화가이며 또한 정치가, 행정가였다는 그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 소위
지워진 일종의 유형(流刑)이었다. 황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했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 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는데, 그의 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그 유명한 〈적벽부 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에서였다.
적벽부>를 쓰게 된다. 이후 1085년 신종(神宗)이 죽고 어린 철종(哲宗)이 즉위하면서 고태후(高太后)가 섭정하면서 조봉랑(朝奉郞)으로 복직되고 등주지주(登州知州)에 임명된다.
복직 이후 중서사인(中書舍人), 한림학사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 항주지주(杭州知州),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영주
"발셔 멀니 가삽거날 급히 가 잡고 부인 말삼을 이르온직, 슉향이 닙을 ㅽㅣ쥬ㅽㅣ쥭하며 왈 '내 얼골과 재 죠를 가지고 어대 가 그만한 옷 밥을 못 어드리요?' 온갖 비양진 말을 무슈이 하고, 한가지 가난 행인과 옷갓 히롱을 참혹히 하오니, 소비 등도 행실이 그리 칙칙하고 더러오물 참아 입의 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