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의 예말, 음운 변화, 방언 등을 탐구할 수 있으므로 지명은 방언보다 고착성이 강한 순수한 우리말로 지어진 경우가 많으나 후세의 한자의 전래에 의해서 또는 행정상의 필요에 의해서 한자어로 대체되어 갔으나 여전히 많은 지명들이 한자어와 우리말로 병존하고 있다. 한자
1600년대라고 짐작된다. 그 근거는 양천이란 마을 지명이 붙여진 연대가 이조 예종 때라고 볼 때 양천 경주 이씨 입향조의 5세손이 양동 경주이씨 파조(派組) 이다. 그 후예 15세손이 30세가 넘었으니 서기 1600년대 초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확실한 기록문헌이 없기 때문에 짐작 추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1. 무형의 고유민속과 향토
관광상품은 다양화에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관되고 전형적 내용은 그 이미지가 부각되기 어렵고 이와 같은 내용이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굳이 먼 나라와 다른 지방에서 그것을 즐길 이유가 없는 것일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고유의 문화는 고유한
1. 서론
인류가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확실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 시기를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단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볼 때, 인명과 가축명, 지명이나 자연물 등에 대한 호칭어의 사용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절대적
전래된 역사
차 의 유래에 관해서는 “중국도입설, 인도전래설, 자생설” 등의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중국도입설은 흥덕왕3년(828년) 견당사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쌍계사와 화엄사일대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한 설이다. 이는 그전에도 차를 마셨고 제례 등에 차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