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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의 가장 중요한 건축적 목적은 유사시 조정을 옮겨서라도 조선을 보전하기 위함이다. 즉, 한양의 행궁과 종묘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산성 내에 이러한 주요 시설들을 세웠고, 산성 또한 한강에서 광진나루를 지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축조되었다.
산성으로 피난하여 저항한다면 도성 내의 백성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장기간 논의가 거듭되던 중 숙종 29년(1703) 3월에는 우의정 신완(申琓)이 북한산성을 축성할 것을 강력히 청함에 따라 북한산성을 수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반대하는 상소와 건의가 많아 주춤거리게 되었고,
축조함에는 성돌을 자연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고 정연하게 다듬어 축조하는 경우가 있다. 산성에서는 자연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읍성 등의 치성에서는 돌을 다듬어 사용하고 있다. 성벽을 축조할 때에는 협축법(夾築法) 성벽의 안과 밖을 모두 돌로 쌓는 방법.
․편축법(片築法) 셩벽
강화도는 홍익인간의 얼이 새겨있는 참성단, 고구려 때 불교를 전래시킨 근원지인 전등사, 고려 39년간의 도읍지 고려 궁지 등 제단 · 사원 · 왕궁 등 고고학적 문화유산이 집적된 곳이다. 강화도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 울 정도로 그만큼 오랜 역사의 유적과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어느 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