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주교와의 만남
이벽은 일찍이 천주교에 심취하여 남몰래 성서를 보던 중 마침내 권철신의 천진암-주어사 강학회의 소식을 듣게 된다. 천진암-주어사 강학회는 한국 천주교 역사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권철신은 1777년 천진암-주어사 강학회를 열고 밤에 눈길을 헤쳐 온 이
정약종의 둘째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정약종은 정약전, 정약용 등과 형제로서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가.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천주교 수용 차기진, “초기 교회 시대 경기 북부 지역의 천주교 -경기도 마재의 나주 정씨 가문을 중심으로-”,「교회사연구」제31집 (2008), 10-13.
정씨 형제
정약종은 그의 형이고 이승훈은 그의 매형이며, 황사영은 조카사위요, 정하상은 조카로서 한 시대의 주요 인물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
1783년 23세 때 이벽에게서 서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천주실의』, 『칠극』등을 보면서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된 다산은 그 이듬해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
정약종(셋째 형)도 연루되었다. 정약용과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은 정약종과는 달리 이미 천주교를 버린 뒤였으나, 노론에서는 이미 이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약종만 천주교 신자일 뿐,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에 무관심한 비신자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되었다. 그리하
정약종, 정약용 형제는 모두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다. 세 형제는 신유박해때 정약종은 사형을 당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15세에 서울 회현동의 홍씨 가문으로 장가를 든 다산은 그 무렵부터 서울 생활을 하면서 당대의 학자들과 어울리며 학문 연마에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