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정지용전집』이 간행되고 ‘지용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지용문학상’도 제정되었다.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 그가 다녔던 대학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고, 정지용에 대한 기념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중
작품 발표를 시작하여 1930년대 대표적인 시인으로 군림하게 된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써졌다. 20년대 소월이 자아표출을 통하여 자기감정을 과다하게 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였다면, 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
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이, 박태원의 오랜 작가 여정에는 불연속적이고 단절적인 성격보다는 연속되며 공통적인 면모 또한 매우 많이 발견된다.
반면, 정지용의 시는 세련된 언어적 조탁과 감각적 형용사들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근대시의 차원을
변신한 작가라고도 말할 수 없다. 물론 박태원은 50여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남에서나 북에서나 꾸준히 작가로서의 외길을 걸어오며 작품 활동을 해왔기에 상당히 다양한 장르와 성격의 작품들이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김진석, 한국모더니즘 소설연구, 국학자료원, 2015. 98.
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이, 박태원의 오랜 작가 여정에는 불연속적이고 단절적인 성격보다는 연속되며 공통적인 면모 또한 매우 많이 발견된다.
반면, 정지용의 시는 세련된 언어적 조탁과 감각적 형용사들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근대시의 차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