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론( 四端七情論 )
배경
고려말 조선초에는 성리학 도입의 시기여서 성리학에 대한 깊은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성종 대(15세기)에 이르러 성격덕의 기철학, 이언적의 리철학으로 성리학의 이론이 분화 체계화된다. 이를 바탕으로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이황, 정지운, 기대승, 이이, 등
정지운의 ‘천명도(天命圖)’를 이황이 수정하면서 비롯되었다. 본래 정지운은 동생 정지림을 교육시키기 위해 ‘천명도(天命圖)’를 작성하였는데 예기치 않게 그 내용이 세상에 유포되면서 이황도 이를 접하게 되었다. 이황을 이를 읽어 본 후 내용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 하여 정지운에게 내용을 수
정지운의 ‘천명도(天命圖)’를 이황이 수정하면서 비롯되었다. 본래 정지운은 동생 정지림을 교육시키기 위해 ‘천명도(天命圖)’를 작성하였는데 예기치 않게 그 내용이 세상에 유포되면서 이황도 이를 접하게 되었다. 이황을 이를 읽어 본 후 내용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 하여 정지운에게 내용을 수
사단칠정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도입된 초기부터 16세기까지 사단과 칠정을 이기론으로 설명할 때 각각을 이(理)와 기(氣)에 분속시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단칠정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정지운(鄭之雲 : 1509~61)의 〈천명도 天命圖〉에서도 사단의 발은 순리이며 칠정의 발은 기가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