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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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단칠정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도입된 초기부터 16세기까지 사단과 칠정을 이기론으로 설명할 때 각각을 이(理)와 기(氣)에 분속시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단칠정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정지운(鄭之雲 : 1509~61)의 〈천명도 天命圖〉에서도 사단의 발은 순리이며 칠정의 발은 기가 겸한 것이라고 했다.이황(李滉 : 1501~70)도 역시 이 〈천명도〉를 수정하면서, 사단은 이에서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 혹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 하여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1559년(명종 14)에 기대승(奇大升 : 1527~72)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이황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8년에 걸친 사단칠정논쟁이 이루어졌다. 사단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커다란 철학적 문제로 대두하게 된 배경에는 이 시기 조선 성리학에 이제까지의 이기이원론과는 다른 이기일원의 이기론이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사정이 있었다.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이기이원론은 이를 기의 존재 근거로까지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키며 이기일원론은 이를 기의 조리(條理)로만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킨다. 이러한 차이가 사단칠정론에서는 기발과 함께 이발을 인정하는 견해와 기발만을 인정하는 견해로 나타난다. 이황은 이기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기일원론적인 견해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설명함으로써 사단과 칠정을 명확하게 이와 기에 분속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이기의 관계가 비록 밀접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理發氣隨之)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氣發理乘之)이라 해도, 사단은 그것이 유래하는 바가 마음 속에 있는 본연지성이요, 칠정은 그 유래하는 바가 기질지성이며, 또 사단은 기가 따르는 것이지만 주로 하여 말하는 것(所主而言)이 이에 있고 칠정은 그것이 기에 있기 때문에 각각을 이지발과 기지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단칠정 문제에 대한 이황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라 불린다.
사단칠정의 개념
4단은 맹자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맹자는 4단을 바탕으로 삼아 인간은 날 때부터 착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였다. 4단은 남의 어려움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수오지심, 남에게 양보하는 사야지심,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시비지심이다.
7정은 4단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다.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욕심내는 일곱 가지 감정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서도 저절로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4단이나 7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다만 4단이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도덕적 감정이라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그 결과가 악이 될 수도 있는 일반적이 감정인 셈이다.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바로 4단과 7정이 무엇을 근거로 나오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따진 것이다.
4단과 7정에 대한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이황은 정지운이 가져온 「천명도설」을 보고는 4닥과 7정을 理와 氣로 연결지어 설명한 부분을 고쳐주었다. 본래 정지운의 도설에는 ‘4단은 理에서 생겨나고 7정은 氣에서 생겨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황은 이렇게 표현하면 4단과 7정의 구분이나 理와 氣의 주체적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고, ‘4단은 理가 드러난 것이고 7정은 氣가 드러난 것’이라고 고쳐주었다. 하지만 이황이 고쳐 준 부분이 많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고, 6년이 지난 뒤 기대승이 이황에게 먼저 문제제기를 하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기대승은 크게 세 가지 입장에서 이황의 견해에 반대의견을 펼쳤다.
첫째는 세상 모든 것은 항상 理와 氣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인 4단과 7정도 하나는 理에서 나오고 하나는 氣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황처럼 4단은 理가 드러난 것이고 7정은 氣가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면 4단에는 氣가 없게 되고 7정에는 理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7정만이 아니라 4단도 감정이기 때문에 7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뽑아내면 4단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4단과 7정의 관계는 4단이 7정 가운데 포함될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성리학의 理氣개념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氣뿐이고 理는 불변의 원리이므로, 4단이든 7정이든 모든 검정의 움직임은 氣의 움직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뿐 4단을 가리켜 움직일 수 없는 理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황은 기대승의 반박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으면서도 理와 氣를 가지고 4단과 7정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황은 4단의 중심이 理에 있기 때문에 理가 먼저 움직이면 氣가 理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며, 7정의 중심은 氣에 있기 때문에 氣가 먼저 움직이면 理가 氣의 움직임 위에 실려 가게 된다는 깃이다.
기대승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본성 즉, 성리학에서 ‘성즉리’, ‘본인이 곧 이치다’라고 할 때의 理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 본성은 氣라는 그릇에 담겨서 나타나며 이것을 순수한 본성과 구별하여 ‘기절지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4단과 7정은 모두 기질지성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기대승의 생각은 같은 감정이기 때문에 4단을 7정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던 것처럼 타고난 순수한 본성도 현실적인 인간의 본성인 기질지성 속에 포함시켜 이해하려 한 것이다. 또, 4단과 7정 모두에 理와 氣가 함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4단은 理가 먼저 움직인 것이라 보는 이황의 견해에 대해 움직이는 것은 오직 氣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논쟁을 통해 기대승과 이황은 4단과 7정이 모두 정이며 두 가지 모두 理와 氣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였다. 하지만 끝내 기대승은 4단과 7정을 나누어 보지 말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이황도 나누어 보자는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아울러 아황은 4단의 경우 理가 움직인 것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고, 기대승 또한 理가 중심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氣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두 사람 모두 각자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