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부趙孟賦등에 의한 복고 운동으로 주로 북송 산수화가의 양식과 묘법이 연구되기도 하였다. 조맹부는 왕족 출신이란 신분과 임금의 사위라는 지위, 품격 있는 서화예술가로서 당시 예술계에 큰 영향을 주어 고고한 문인 사대부의 기풍을 나타내는 남종문인화의 발전을 가져와, 원 말기에 이르러서
조맹부(趙孟+)·이간(李N)·고극공(高克恭)·상기(商琦)·임인발(任仁發) 등은 특히 회화방면에서 이름을 떨쳤다. 조맹부는 벼슬이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에 이르렀으며 서(書)·화(畵)·시(詩)·문(文)의 다방면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정교하고 지나치게 수식적인 남송원체를 반대한 그는 복고
조맹부, 그리고 16세기의 문징명, 축윤명 등의 중국 역대 명필과 맞서는 탁월한 서예가였고 문장가. 서화감식가였음)이었으며, 그가 내세운 남.북종화 이론은 그 이후 중국회화사상 돌이킬 수 없는 문인화 우월사상을 심어 놓았다.
동기창에 의해 북종화를 업신여기고 남종화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맹부(趙孟부)의 서체(書體)를 도입하여 이를 널리 유행시켰고, 그의 저서(著書) 「익재난고(益齋亂藁)」의 소악부(小樂部)에 칠언절구 한시(漢詩)로 번역하여 실은 17수(首)의 민간가요는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