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진(趙錫晉, 1853~1920) 등이 맡았으며 크기는 110.5×61.8cm이다. 화면(面)의 오른쪽 상단에 “영조대왕의 어진이다. 광무 4년 경자년(1900년)에 다시 베껴 그렸다.” 英祖大王御眞 光武四年 庚子移摹
란 표제가 붙어 있어 제작시기를 알 수 있다. 어진의 모습은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조석진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 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민영익
정치가, 화가. 자는 자상, 호는 운미, 죽미, 원정, 천심죽재주인등. 본관은 경기도 여흥. 승호의 아들.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외척으로서, 1877년 문과에 급제, 1883년 미국전권대신, 여러 벼슬을 거쳐 한성판윤, 병이형예조
조석진,『농업과 미래사회』,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4, 286~288면
이러한 농업의 위기는 가깝게 식량자급률의 저하로 확인할 수 있다. 1965년 93.8%에 이르던 식량자급률은 산업화와 함께 급격히 하락해 2006년에는 26.9%를 기록했는데, 이중에서 쌀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들의 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석진, 안중식, 김규진, 이도영, 고회동, 오세창 등이 서화협회를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김은호, 노수현, 이상범, 김기창, 장우성, 배렴 등이 선전을 무대로 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히때에는 전통적인 일본화의 경향이 진은 절충파 및 문인화가 정립되었으나 우수한 작품은 나오지 못하였다. 광복 후
●현대 한국미술
현대 한국미술은 국권피탈 이듬해인 1911년 전통회화 육성을 위하여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창립되고, 조선 최후의 화원 화가 소림(少琳) 조석진(趙錫晉),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등이 초치되어 제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이 서화미술원은 8년 후에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으나 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