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강력한 정책으로 불교는 존립 자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억불정책 속에서 산중승단으로 들어간 불교계는 전란의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내부에서 계통을 확립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며 호국불교의 특색을 갖게 된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불교계의 동향을 초기 ․ 중기 ․ 후기로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
1.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에 대한 불교의 대응
(1) 이교회통론(二敎會通論) - 유교와의 공존 모색
조선후기 불교계는 유학자들의 억불론(抑佛論)에 맞서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도(道)가 결코 유교에서 지향하는 진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조선 초만 하더라도 11종이었는데. 태종대에 7종으로 줄고 다시 세종대에 선(禪) ․ 교(敎) 양종으로 줄었다가. 마침내 중종 대에는 종단 자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승려의 신분도 하락하여 고려시대에 누렸던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박탈당한 체 각종 토목공사에 동원되었다. 그 중 승려들의 도성출입
조선초 역대 왕들의 信佛의 모습과 불교에 기여한 업적, 조선조 초기의 불교계의 동향을 살펴 보기로 한다.
태조 李成桂는 조선조 창업 이전부터 불교와 인연이 매우 깊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독실한 불교 신봉자였다. 그는 즉위 전에 太古和尙, 懶翁和尙 등을 師事했으며 無學自超와도 관계가 긴
7. 넷째 시대: 중세 후기 문학
제 2기 조선 전기
7.1 왕조 교체기의 문학
7.1.1. 전반적인 양상과 문제점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 변화가 어느 정도의 의의를 가지는가는 나소 논란이 있다. 임금의 성이 달라지고 국호가 바뀐 것이야 대단한 일이 아니고, 불교를 최고 이념으로 삼은 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