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화
1)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이 죽은 후 세자 융(연산군)은 조선 제 10대 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는 전국의 모든 도에 어사를 파견하여 지방관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의 고초를 살폈다. 연산군 초기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문치주의가 계속된 시기로 보이지만 그 밑에서는 사림파와
사화’이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유능한 선비들을 잃은 사건이다. 먼저 조선시대의 왕실을 간략하게 알아보고 거기에서의 사화를 요약하고 난 뒤 사화중에서도 4대사화로 꼽을 수 있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에 관해 연구해보았다. 연구방법은 조선왕조실록과 인터넷 자료를 주로 이
조선 중기의 문신. 소윤의 영수이며,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동생. 을사사화의 공으로 공신으로 책록되었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삭직되고 강음에 귀양가서 죽었다.(1565)
을 중심으로 한 소윤 간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었다. 서열상으로 전임 왕비였던 장경왕후의 일족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