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서해안을 답사
- 1832년 영국의 동인도회사 소속 애머스트호가 충청도 연안에서 머무름
→ 목적: 조선시장 조사/ 이를 은폐하기 위해 성경의 전파라는 미명을 도용
- 1866년 미국 상선 서프라이즈 호가 평안도 연안에서 표착
- 단순한 표류, 난파선이 아닌 약탈목적의 이양선들 출몰
조약체제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임.
조선과의 관계 조정은 어려운 문제였음.
청일수호조규의 의의 또는 특징
① 종주국 중국과 속방시 된 일본이 서구식 국제관계의 이념과 원칙에 입각하여 맺어진 최초의 조약. ---> 이것은 동아시가 국가간의 상호관계도 조공체제에서 벗어나 조약체제 편입되
조약을 맺지 않으면, 거느린 군사 4000여명과 후에 또다시 침공하겠다고 위협
이후 개화파의 형성
고종과 개화파 인사들
- 수신사 김홍집 파견
- 조선책략
- 제대신헌의
- 이동인, 탁정식 일본 파견
중국의 새로운 조선 정책
미국의 상황
일본의 상황
-조선 무역 독점, 해결되지 못한
조선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저의가 담긴 것이고, 제7조는 군사작전시의 상륙지점을 정탐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일본의 적극적인 조선진출을 견제하려는 청국의 주선으로 미국과도 통상조약을 체결하고(1882),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우호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본격적으로
조선에 중극 은 50만 냥을 제공함과 동시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을 체결한다.
이 장정은 일종의 청국과 조선간의 조약인데, 조약(條約)이 아닌 장정(章程)으로 표현된 까닭은 조선이 청국의 속국이라는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조선은 고종의 승인 없이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