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모리야마, 조선 : 신헌
일본은 국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 추궁
일본은 조선과 교역을 요구. 조약을 맺어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만국공법의 기본이라 주장
일본은 조약을 맺지 않으면, 거느린 군사 4000여명과 후에 또다시 침공하겠다고 위협
이후 개화파의 형성
고종과 개화파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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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사를 지배한다.
이러한 세계사적 조류에 후발주자로서 일본이 뛰어들었다. 후발주자였으므로 일본은 제국주의의 일원으로 기능하기에 아직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했다. 따라서 침략적인 경제기지의 건설이 필요했다. 그러한 대상으로서 조선이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배
조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제국주의 열강의 복잡한 대결구도에 본격적으로 놓이게 되었던 반면, 일종의 상호견제 체제 속에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거문도 사건의 의미는 19세기 후반 세계적 차원에서 대결하던 영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