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상으로는 ‘지리, 도참, 예언서, 정적의 저술, 종교류, 잡서류, 통치세력의 이념에 어긋나는 책, 국가변란의 범죄를 저지른 자의 책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금서는 권력, 지배질서에 대립하는 내용을 가진 서적이다. 그러나 권력기반이 물리력에 의해서가 아닌 구성원 상호간의 합의에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5. 평양성의 탈환과 강화
1) 평양전투와 벽제관 전투, 행주전투
1592년 12월 25일 제독 이여송은 군사 3만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리하여 1593년 1월 5일 무렵에는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순안에 주둔하였다. 1월 6일, 약 8천의 조선군사와 함께 이여송의 군대는 평양성을 포위했다. 2천의 의승군
2. 일제시대(1910년~1945년) : 지방행정제도
(1) 1910년대의 헌병경찰통치와 침략적 지방행정제도
1910년 8월 한국의 합병을 선언한 일제는 그 해 10월 한국통감부 대신에 조선총독부를 개칭하고 헌병경찰에 의한 무단통치를 시작하였다. 조선총독의 절대권력은 일본육군헌병들에 의해 유지․관철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