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필자는 어릴적부터 삼국지를 즐겨 읽은 것이 기억이 난다. 서양에서 반드시 통독해야할 것이 성격이라면 동양에서는 처세술과 사람을 이끌어나가는 데 잇어 반드시 경영자가 통독해야할 것이 삼국지라고 볼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장편 소설, 역사 소설로, 서진(西
나관중은 위, 촉, 오 삼국 중 촉한 정통론이라는, 유비를 중심으로 한 인물의 편에 섰던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조조를 재조명하려는 첫 번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조조의 이미지에 반하여, 진수의 삼국지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등장하는 조조에 대한 기
역사는 그 성격 면에 있어서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것들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수성이라 함은 역사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당시만의 어떤 특수한 상황에 의하여 역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 흐름이 바뀌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잘 나가던 왕조가 여자 한 명 때문에 갑자기 몰락의
却說劉備用龐統中計, 佯欲東歸, 卽遣人至白水關, 報告楊懷, 高沛二將;
각설유비용방통중계 양욕동귀 즉견인지백수관 보고양회 고패이장
白水關:관문 이름. 광한군(廣漢郡) 백수현(白水縣)에 있었으며, 옛터는 지금의 사천성 광원(廣元) 현성 북쪽에 있다. 관문의 성(城)은 동쪽으로 광원에 접해 있고
조조 혼자 결단하여 하후돈 등을 대동하고 동탁을 추격했다. 그러나 조조는 변수에서 동탁의 부하 서영에게 패하고 만다. (다만 삼국지연의에서는 하후돈이 난전 끝에 서영의 목을 기어이 베고 만다고 기록되어 있다.)조조는 제후들이 주둔한 산조로 돌아오지만 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군사를 움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