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식물성 섬유를 물속에서 자르고 두들겨 섬유 표면에 많은 털을 일으켜 섬유 상호간에 친화력을 갖게 한 다음 이것을 얇은 판상으로 한 후 건조해서 섬유의 탄력을 복원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말하는 종이의 어원이 되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와는 종이의 개념이 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외국 학자들이 설을 지지하고 있다.
③ 6~7세기 설
610년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의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다. 담징이 종이와 함께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 제조도구이다. 따
우리나라한지(韓紙)와 중국의 화지(華紙)가 구별되는 시기라는 점도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8세기 이후의 종이는 중국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든 종이가 아니고 두드려서 종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종이로서 가장 오래된 고구려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
종이인지는 확실치 않다.
두 번째 증거로 백제는 서기 285년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주었는데, 이것은 채륜이 종이를 만든지 180년 뒤로 이미 종이를 만들었으리라 추측된다.
셋째 3세기말부터 4세기말까지 중국 대륙에서 난리를 피해 우리나라로 온 이주민들이 많아 이들 가운데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가
세기경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종이나 저(楮)를 사용한 제지법이 그 명칭과 함께 전래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3세기 경 후한 말 낙랑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종이와 종이 만드는 법이 들어 왔다는 설이 있다. 그것은 첫째 평남 대동군 남정리 채협총에 근거한다. 서기 1931년 조선 고적연구회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