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시절 (1949년 ~ 1994년)
I. 혈맹관계인 북한과 중국 - 군사적 지원
-> 김일성은 유엔군의 반격으로 전선이 불리해지자 마오쩌둥에게 군사지원을 요청. 그후로부터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 유지
II. 북중관계 발전 계기
-> 6.25전쟁은 김일성이 소련과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중국과 소련 양
소련은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비난함으로써 중소분쟁(中蘇紛爭)이 시작되었다. 북한은 내심 중국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소련의 경제지원이 필요했기에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중소분쟁이 격화되면서 북한은 점차 중국을 편들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은 중국공산당 출신이
소련의 원조 및 공군지원 문제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저우언라이가 소련에 파견되었다. 저우언라이는 스탈린과의 교섭에서 공군지원은 이끌어내지 못하지만 무기와 장비제공은 이끌어내었다. 소련공군이 참전하지 않는데 대해 중국 내부에 동요가 일어나 잠시 출병이 지연되었지만 마오쩌둥의 강력
전쟁에 참여했는지, 그 참여하게 된 경위와 이유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중국이 얻은 이익과 잃은 것,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형성된 국제적 관계에 대해서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이번 발표의 목적이다.
2장. 전쟁 발발 전의 각 국 관계 및 UN의 태도
1절. 북한과 중국과 관계와 북한, 중국, 소련의
관계를 맺었고 소련의 지원하에 출범한 북한정부는 공산구가와 관계를 먼저 갖게 되었다.
남한정부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행위는 1948년 12월 12일 3차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이다. 주지하듯이 이 결의는 남한정부가 한반도의 다수 인구가 살고 있고 유엔에 의한 선거감시가 가능했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