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정상화의 과거 및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2002)
셋째, 미국과 중국관계의 변화이다. 정반대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과거의 적대관계에서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70년대부터 긴장완화라는 흐름 속에서 발견할
, 사회적요인, 체제적 요인에 따라 알아보았다.
Ⅰ. 개인적 요인
한·중 국교정상화는 노태우 정부 때 1992년 협상이 이루어 졌다. 이에 한국 측에서 어떻게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이루 었는지 개인적 요인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노태우대통령의 전반적인 개인적 성향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중국과의 수교 정상화는 필연적이었다. 중국은 공산권 국가이기 이전에 노동 공급이 좋고 수요시장이 넓다는 면에서 이미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최적의 거래처였고, 당시 대부분의 한국정책이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한국의 국방장관으로서 첫 방중에 이어 2000년 1월 遲浩田 중국 국방부장이 답방함으로써 양국 간 군사 분야에서의 교류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2000년 10월 朱鎔基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양국관계를 전면적인 새로운 협력단계에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한중 양국 지도부 간의 상호 방문
중국의 참전에도 영향을 미쳐서 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중국인민지원군에게 내린 명령에서 “중국동지는 반드시 조선의 사정을 자기 사정처럼 간주해야 한다.”는 말을 썼다. 이종석「북한-중국관계」(서울, 중심, 2001) pp. 52
또한 연변과 만주지역의 조선족들도 중공 측에 참여했다. 당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