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조반파에게 충성심 경쟁 유발 - 무력투쟁으로 인한 희생
2.2. 문화혁명기에 작가들의 희생
* 노사(老舍)가 홍위병의 핍박으로 사망 - 문예계에 큰 충격
* 살아남은 작가나 예술가들 - 투옥, 하방되어 강제노동과 사상개조 학습
* 사인방에 의한 희생, 또한 모택동의 사조나 동의에 의해
운동을 책임질 사람들을 배출한다. 이 시기에 각지의 통치기관으로서 ‘혁명적’ 군ㆍ대중ㆍ간부의 3결합의 ‘혁명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것들은 개혁노선이 개시된 후에는 각급 정부로 탈바꿈된다. 이 사이에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임표는 미중 접근에 반대하고 또한 권력의 확립을 위해
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해 세대교체론이 대두되었다.
김일성 또한 간부들이 지난 시기 많은 일을 하였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니
해방 후 3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나이를 많이 먹었고 그들의 수준도 빨리 발전하는 현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북한은 세계의 변화에 따라
운동으로 피폐해진 중국을 살리려고 정책을 조정해 나갔다. 개인의 생산의지를 고려하고 실질적인 방향으로 산업을 진흥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1966년부터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할때까지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