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정도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나) 한대 : 환담(桓譚)은 신론(新說)에서 하찮은 이야기지만 治身과 理家에 도움되는 바가 있다고 하여서 소설의 유용성 부분을 언급했다. 특히 {한서·예문지}에서 반고는, 한편으로 '제자 10가에서 볼만한 것은〔소설가를 제외한〕9가 뿐'이라고 그 가치를 경시하면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문언소설의 경우는 단지 흥미위주의 소일거리 정도인 잡사나 하찮은 이야기로 인식되었고, 민간에서 강창형식으로 비롯되어 명청의 장회소설로 발전한 백화소설도 봉건예교에 입각한 사대부들에 의해 발전이 제약되었다. 따라서 중국문학에 있어서 소설은 다
이야기지만 작자의 창의에 의하여 재구성되고 창작된 허구적인 얘기를 기록한 것이다. 흔히 위진남북조의 지괴서의 대표로 <<수신기>>가 거론되는데, 위진남북조의 지괴소설이 사실을 기록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간보는 수신기를 지은데 에는 다음과 같은 동기가 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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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등의 도가와 기타 제파가 나타나서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큼 극히 활발한 상황을 나타냈다. 중국사에서도 특색이 있지만 또 고대 그리스의 철학계와도 비교된다. 그 발흥된 이유는 역시 사회적인 기운에 의한 것으로서 주왕조의 가족제가 붕괴되어 혈연의 일족에게 수호되어오던 영
변화로 혼란스럽게 되었으나, 언론은 오히려 자유와 사상의 해방 → 학술과 문화가 귀족에서 평민층으로 확대되고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학문과 지식을 펼침 ⇒ 이러한 문화번영의 시기를 제자백가에 의한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라 부르며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산문문학을 일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