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서성 아래에 6부를 두었으며 추밀원(樞密院)을 대도독부(大都督俯)로 명칭을 바꿔 군대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어사대(御史臺)로 하여금 감찰업무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지방에는 행중서성(行中書省)을 두었다.
그러나 타이쭈는 관제를 개혁함으로써 중앙집권적 황제권의 강화를 꾀하였다. 최
주위에 노를 두었으며, 도시에는 특별히 시내행정을 관장하는 녹사사를 설치했다. 수도를 중심으로 한 인근행정구역을 뜻하는 복리는 중서성 직할이었는데 그 밖의 지역에는 행중서성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처음에는 중서성의 출장소로서 임시로 설치된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황제 직속의 상설지방관
중서성과 문하성을 정리하고 황제가 정무를 결정(내각제로 만듬)하였으며 환관제도를 만들었습니다.
《 문화 》
명의 타이쭈주위엔장은 이민족 정복황조인 위엔황조를 타도하여 이들을 중국영토에서 축출하고 한족에 의한 황조를 세우는 것을 기치로 내걸고 명을 건국하였습니다. 따라서 명의 문화
행중서성(行中書省:약칭 行省) 행추밀원(行樞密院:行院) 행어사대(行御史臺:行臺)를 두었는데, 뒤에 점차 정리되어 상설관청이 되었다. 그러나 군정(軍政)은 일원화의 필요성에서 비상시가 아니면 행원(行院)을 두지 않고 모두 중앙의 추밀원이 관할하였다.
지방의 행성 및 행대는 비록 중앙의 성(省)
중서성(中書省) 추밀원(樞密院) 및 어사대(御史臺)였다. 중서성은 황제의 명령인 법령을 입안(立案) 기초하는 기관으로 그 아래에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의 행정 6부를 두고 그 법령의 시행을 맡았다.
중서성의 장관인 중서령(中書令)은 가장 영예로운 관직으로, 황태자가 이를 겸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