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2차적이며 비원생적이다. 오리엔트동양은 씨족의 전통이 그대로 잔존하여 하나로 융합하였다. 서양 고전고대는 씨족제 전통을 가지고 2차적 집주를 하지만 빨리 전통에서 벗어나 하나의 공동체로 집결하였다. 중세에 혈연관계는 이미 민족이동 후 소멸하고 개인자격으로 공동체에 들어가며 기
도시와 상업을 거의 파멸로 몰고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나 화폐는 유통되었고 도시민의 상공업 활동이 미미하게나마 존속되었다. 더욱이 중세 안정기인 10세기에 이르러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상주인구와 그 활동범위가 점차 커졌으며, 12세기말에는 유럽의
서양의 예술이 융합되었다.
이슬람이 유럽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내치에 신경을 쓰는 사이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부활한다. 이 부활의 중심에는 프랑크 왕국이 있다. 기독교로 무장한 프랑크 왕국은 정복사업을 통해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프랑크 왕국이 쇠퇴하고, 점점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도시이다. 십자군 원정은 중세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며 사회상이자 사회변혁을 불러일으킨 원동력이 되는 서양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쟁이다. 십자군 원정을 가능케 했던 당시 유럽의 종교적 열정을 배경으로 하여 성지의 탈환이라는 신성한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결국 그 뜻이 변질되고 두
중세도시의 특징이었다. 즉 도시는 봉건적 계약을 맺고 영주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였으며, 영주 재판의 사법적 관할권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도시민의 생활은 상호간의 통제와 규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봉건 사회에 내재한 생산력의 한계와 도시 구매력의 약화로 인하여 중세도시는 일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