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수무원록언해
배경과 기원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에는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조류가 나타나는 한편 《무원록》을 대신하여 우리의 실정에 부합하는 지침서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1796년 간행된 것이 《증수무원록언해》이다. 《증수무원록언해》는 《무원록》을
‣17세기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유형
문헌자료. 목판본.
편찬
이성(李惺)
시대
조선시대
1617년(광해군 9년)
이 책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삼강행실도≫(세종때)·≪속삼강행실도≫(중종때)의 속편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정표를 받은 “충신·효자·열녀” 등을 중심으로
자료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나
자료에서 국어학적 특징 찾아내기
자료 내용 해석하기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76)
충신·효자·열녀
1,000여 사람. 각 한 사람마다 1장의 그림을 붙이고 한문 다음에 국문언해를 붙였다
국어학적 특징
이어적기(연철)
끊어 적기(분철)
거듭 적기(중철)
두음법칙이 나
증수무원록’이었다. 세종대의‘신주무원록’을 기본으로 쓸데없는 것은 덜어 내고 빠진 것은 보충하여 전체적으로 일목요연해진데다 이해가 어려운 문구들과 단어들을 책 앞에 모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증수무원록 역시 중국의 공문서 양식을 그대로 두는 바람에 원나라의 방어가 많고
증수회(贈收賄)공공연히 행해지고 기강이 허무러지고 도적이 각처에 다투어 일어났다. (증수회: 뇌물을 주고받는 일) 이 때 신라의 비장(裨將)견훤(甄萱)은 반기를 들고 백제의 유민을 이끌고 완산(지금의 전주)에 근거를 두어 후백제라 스스로 부르고 궁예는 철원에 근거를 두고 도읍을 세워 태봉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