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들어서게 됨.
각계각층의 기록과 증언 등을 통한 문학사의 새로운 단계.
새로운 표현방식이 나타나고 상하층의 간격이 좁아짐.
국가 공식 기록
<선조실록>
선조의 의주 피난 내력
정탁 <용사일기>
김용 <호종일기>
박동량 <기재사초>
전란의 경과와 교훈
조경남 <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등신이 지나가는 곳 바닷가의 조개나 소라 등속은 모두 껍질이 빈 채로 남게 되는데 이는 영등신이 까먹어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담수계(淡水契)의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는 위 기록과 대동소이한 국한문 혼용의 축약형이다.
전승되고 있는 제주도의 <영등굿>은 제주시 건
간이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강릉시가 1999년 의욕적으로 조성한 모래시계공원에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식수시설마저 찾아볼 수 없고 입간판과 가로등은 녹슬어 주위 미관을 해치고 있는 상태이다. 1994년 드라마 모래시계로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일약 유명 테마관광지로 변모한지 10년 된 정동진
사람이 짧으면 늘려 죽이고, 길면 긴 부분을 잘라 죽인 고대 아테네의 도둑 신화)와도 같은 서구 신화학의 재단에 의해 동아시아 신화의 상당 부분이 비신화적인 내용으로 간주되거나 그 의미가 왜곡되기도 했다. 근대 이래 한때 풍미했던 '중국 신화 부재론'은 당시 서구 신화학의 편견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