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산가요록의 찬자 전순의의 생애
1. 전순의(全楯義)의 생몰 연대 고찰
전순의(全楯義)의 생몰연대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으나 1459년 세조5년에 세조임금이 고향에 은둔(隱遁)하고있던 유의(儒醫) 임원준(任元濬)을 특별히 불러 전순의가 늙고 병들어 의생(醫生)을 가르칠 사람이 없고 또한 의술(
찬자들이 각각 자신의 음성인식에 의한 표기 방식에 따라 표기하므로 교재마다 동일한 음절의 표기가 다르고, 심지어는 한 교재 안에서도 동일한 음절의 표기법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사실, 훈민정음이 공포된 후 한글로 표기된 중국어, 몽고어, 만주어, 일본어 등의 회화교재가 계속 나왔으
찬자의 주관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삼국유사』는 개인의 주관성이 확연하게 가미된 책이며, 이런 요소는 독자들에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일종의 심리적인 쾌감을 느끼게 만들며, 해당 인물과 독자 자신을 ‘감정 이입’시키게 유도한다.
일연은 『삼국사기』의 내용을 적지
찬자 종부지수상 차왕왕탈취적삭 환자적인 각장무불외복
위지경덕은 창을 잘 써서 또 적의 창을 잘 피하니 매번 출전할때마다 경무장한 기마로 적진에 들어가서 어지럽게 비록 창을 모아 찔러도 종내 부상을 입지 않으니 이는 왕왕 탈취하여 어지러운 창으로 다시 적을 찌르며 각 장수는 두려워하지
『균여전均如傳』의 문제점
<목차>
Ⅰ. 서론
Ⅱ. 『균여전』의 선행 연구와 문제점
1. 균여의 출생
2. 균여의 저술
3. 『균여전』의 체제
4. 『균여전』의 찬자와 작가 의식
5. 三句六名에 대한 해석
Ⅲ. 결론
Ⅰ. 서론
『균여전』은 고려 시대 赫連挺이 엮은 균여의 전기로, 균여의 생애가 중심이 된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