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산가요록의찬자전순의의생애
1. 전순의(全楯義)의 생몰 연대 고찰
전순의(全楯義)의 생몰연대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으나 1459년 세조5년에 세조임금이 고향에 은둔(隱遁)하고있던 유의(儒醫) 임원준(任元濬)을 특별히 불러 전순의가 늙고 병들어 의생(醫生)을 가르칠 사람이 없고 또한 의술(
농업에 필요한 것만 가려 뽑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원예기술은 대체로 사시찬요초의 그것과 유사하였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미나리, 아욱, 염교, 박, 겨자(갓) 등에 관한 기록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다.
온돌은 우리의 독특한 난방법이었던 온돌은 산가요록이 저술되
Ⅰ. 서론
1527년 중종 22년에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에서 “항(沆)”을 “구들 강”이라고 하였고, 장갱의 “갱(坑)”은 구덩이 갱인 것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즉 “온돌”은 구들, 즉 항(沆)의 한자표기로서 조선시대 초기부터 써 왔으며, 구들을 놓은 실전체는 “온돌방(溫突房)
의 밤과 새벽의 온도가 영상에서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큰 일교차로 인하여 체감온도가 떨어져 실제 거주자들은 극심한 추위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중동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전통적으로 겨울철 전열기기 및 보온제품의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시장에 온돌의 생활풍
의 저수지가, 또 6세기에는 동해안지역에서 대규모 관개시설이 축조되었다. 이 시대의 벼농사는 저습지대를 중심으로 한 원시적 수경직파법(水耕 直播法)과 특수한 경우 밭농사법을 원용한 건경법(乾耕法)이 휴한제와 함께 행해졌다고 추정된다.
통일신라 때의 벼농사법을 보여주는 청주 부근의 4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