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民으로 승화시켰다. 다만, 유학에서 민을 규정할 때의 한계처럼 천민(天民) 역시 현실정치를 바꿀 정치적 주체는 되지 못하며 단지 어진 정치가 펼쳐진다는 전제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왕도사회 건설의 주체일 수는 있다고 바라보았다.
또한 『맹자』 「진심 하」 편에서 “백성들이 가장 소중하고
천민(天民)이 있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수양과 능력의 보충에 힘쓰는 학자(學者)가 있으며, 고결한 인품을 갖고 처음부터 세상에 관심이 없이 사는 은자(隱者)가 있다.
율곡이 말하는 선비는 모두 개인의 행복보다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벼슬을 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모습을 보였
天民族에 융합되기 원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웅녀가 현실생활에 안주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굴 속에 들어가 마늘과 쑥만으로 100일 동안 禁忌를 하면서 자의로 고행을 겪는 과정, 그리고 3․7일 동안 고난의 수련기간을 거친 웅녀가 이상적인 천상의 삶을 살기 위하여 환웅과 결혼하
맹자의 생졸년월에 관한 고증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시도 되었으나 극히 번거롭고 일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맹자의 향년은 대략 74세, 84세, 94세,97세 네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일반적으로 84세(BC 372~289) 설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가 장성한 후의 修學에 관해서는 세 가
1-2) 조선의 성리학
조선이 성리학을 수용한 배경은 아까 말한 대로 고려 말부터이다. 고려의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길재 등이 유명한 성리학자이고 배불론자(불교를 배척함)인 정도전이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면서 성리학이 국교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선의 성리학은 1420년 집현전 설치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