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북중관계의 태동
1. 북중의 정치/군사적 연계의 시발점 : 국공내전과 동아시아 혁명리더
(1) 국공내전 당시 김일성은 전략물자 및 의료지원을 적극 제공하며 중국공산당을 후원
(2) 스탈린은 얄타체제 포기 이후 중국공산당에게 아시아의 혁명리더 자격을 부여, 파트너로 지정
2. 중국의 내
I. 서론
중국의 대외정책의 방향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대중화사상’의 실현이다. 독립자주원칙, 평화공존 원칙, 하나의 중국 원칙, 반패권주의 등은 그 추구하는 것이 각기 상이해 보이나 결국 그 목표점은 단 하나, ‘대중화’를 이루는 것이다.
크게 보아 소련 붕괴 이전 중국의 대외정책은
관계가 존재할 경우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할 수 있으나, 미·중관계처럼 이 모든 면에서 확연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관계는 전략적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기본적 인식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아마도 「9·11 테러사태」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
테러이후 중국의 안보정책
1) 9.11테러이후 중-미 힘의 분배양상
① 중-미 협력기조와 상호불신 잔존
9.11 테러사태 이 후 중국은 대테러 전에 대한 즉각적인 지지표명과 협조로 중-미관계의 일대 조정 국면을 맞게 되었다. 10월 19일 상하이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을 통해 2001년 미중 정상 간의 첫
전체제 붕괴 이후 중‧미관계는 대립-화해-협력의 순환을 기본 틀로 전개되었다. 1989년 이후 크게 5차례의 순환이 있었는데, 1989년 천안문사태, 1993~94년의 MFN(최혜국대우) 문제, 1995년의 대만해협 포격을 둘러싼 긴장, 1999년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사건, 그리고 2001년 4월의 항공기 충돌사건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