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청풍김씨 가문은 조선후기 정치사적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다뤄보겠지만 김식 때부터 서울지역으로 편입하였지만 본격적인 정계활동은 김육(金堉)이라고 볼 수 있다. 한당의 영수인 김육은 학문적으로 소옹학(邵雍學)을 바탕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정
5> 음운, 어휘, 문법 관련 자료
<훈민정음 언해본 (訓民正音 諺解本)>
1. 원문
2. 개관
<훈민정음 언해본>은 <세종 어제 훈민정음 (世宗 御製 訓民正音)>이라고도 하는데, <월인석보>(희방사본)의 첫째 권의 책 머리에 실린 것이다. 한문본인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에 나타난 예의(例義)만을 국
청풍김씨 사이의 장남으로 1731년 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몸이 약했지만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4-5세부터 천자문, 소학, 사서 등을 읽었다고 한다.
1741년 홍대용은 여름 평남 용강군의 三和부사가 된 조부 용조의 행차를 모시고 관서로 여행하였는데, 그 해 음
1. 홍대용의 생애
조선시대의 실학자. 과학사상가. 호는 담헌, 홍지.
홍대용은 조선 영조 7년 신해 1731년 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에서 뒷날 목사 벼슬에 오른 아버지 홍력과 청풍김씨 사이에 첫아들로 태어난 그는 미호 김원행을 스승으로 하여 성리학을 배웠으며, 1765년 계부 홍억의 연경
청풍김씨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청나라에서 들여온 서양의 천문학 서적들을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가풍적인 배경 속에서 동서양의 천문학을 두루 공부한 김석문은 1697년에 『역학도해(易學圖解)』라는 책을 저술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서 조선 최초의 지전에 대한 시각이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