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헌덕왕 3년(311) 신라 해적선 20 여척이 대마도를 찾아 엿본 일이 있고, 헌덕왕 5년에는 신라인 110명이 일본 소근도에 상륙하여 서로 싸운 일도 있다고 하였으나, 청해진이 설치된 이후에는 이런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후 청해진이 혁파된 이후인 경문왕 6년(866)에는 신라해적의 소
: 장보고 세력은 우선 지역별로 보면 크게 세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나는 당의 산동반도의 적산촌 일원과 운하변을 중심으로 해운력에 바탕을 둔 신라인 촌락과 신라방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신라의 서남해안에 위치한 청해진을 근거로 성장한 세력이고, 마지막으로는 재일신라인사회이다.
Ⅰ. 序論
『한국사의 미아 해상왕 장보고의 진실』
우리가 참고한 서적의 부제였다.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장보고는 그의 업적에 비해 서는 지나치게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 되었고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신라하대에 청해진을 근거로 활동한 지방 호족 정도
국제 무역항로의 중간 기항지였다. 장보고는 828년에 지방민 1만 명을 모집해 군사를 조직하고, 해군기지인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에서 해적을 소탕하고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면서 서서히 동지나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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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개요
선박의 항해는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통행위이기 때문에 육상교통기관과는 달리 충분한 제어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고 항로가 바다 위에서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한 우리 나라의 경우 짧은 해안선에 항만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