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모두들 한 번씩은 접해 본 광장, 대학생이 돼서 다시 읽는 광장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현재의 나는 남북이 분단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해방 후 분단이 되고, 6.25전쟁을 거친 그 시대 상황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은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는 게 다였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내가 이명준
문학적 방식이다.
셋째, 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고질적인 치질과 폐병 등의 육체적인 질병과 훗날 인간문화재로 지정받게 되는 당대 명창 박녹주에 대한 사랑병, 그리고 가난이었다. 김유정에게 소설 쓰기는 이 같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 본문 일부 발췌 ]
비참한 최후로 끝나는 이 소설을 읽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개츠비의 죽음과 데이지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연인을 찾고 싶은 마음에 부를 축적하고, 그 연인을 만났을 때
자신의 사랑을 거침없이 내보였는데 그
문학의 발전적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노력은 투철한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며 곧 역사의식과도 관련된다. 여기에 작가의 현실인식 내지 역사의식이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작가는 최인훈이다. 그가
탈무드에는 사랑의 가치에 대한,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가치관과 “험담이 살인보다 위험하다. 세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험담을 한 자, 험담을 들어준 자, 험담 당한 자를.”이라는 말을 비롯하여 알고 있었지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