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독립지사로 둔갑하기까지 하는 몰역사적인 현상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친일청산의 논의는 번번이 벽에 부딪혀 왔다. 이 글에서는 친일파에 대한 개괄과 해방 이후의 청산 과정,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 등을 알아봄으로써 친일파 청산의 필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친일파의 평가에 있어서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이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친일파의 처단문제가 거부당하고 방해되어 온 이유가 무엇일
친일파란 일제 강점기 때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합병 당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본에 빌붙어서 나라를 팔아넘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친일파라 한다. 친일파를 조사하다 보니 친일파의 정의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 지금도 친일파에 대해서 명확히 무엇
한일합방조약 체결 당시의 내각 총리대신으로, 매국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이완용의 생애는, 일단 관계로 나아갔다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영어를 배운 후 미국통의 외교관리가 되었다가 아관파천, 러일전쟁 등을 계기로 친러시아파·친일파로 변신해 가는 과정과 친일파로 변신한 후 내각 총리대신
2> ‘을사조약’ 체결의 주역
러일전쟁이 일본 쪽에 유리하게 되자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하여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주동한 이완용은 그 공으로 의정대신 서리 및 외부대신 서리가 되었다가(1905. 12. 8), '을사보호조약'의 결과 조선의 통감이 된 이토의 추천으로 의정부 참정대신이 되었고(1907.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