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에 따르면 믿음은 예정 선택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로운 역사에 의해서 어린 아이에게 임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칼빈은 기독교강요 1539년 판 이후, 유아세례의 근거를 더 이상 하나님의 예정 선택으로 말미암은 유아의 신앙의 가능성에 두고 있지 않다. 이제는 계약 교리가 유아세례의
칼빈은 삼위일체의 이해를 더 강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둘째 칼빈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책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연관시킨다는 것이다. 셋째는 칼빈이 언제나 인격의 통일성내에서 각 성질의 온전함을 확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웰즈의 평가에서 미흡한 것이 있다.
칼빈은 성육신의 목적을
칼빈이 언제나 인격의 통일성내에서 각 성질의 온전함을 확언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웰즈, 이승구 역, 성육신의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분석 , pp.259-260 그러나 웰즈의 평가에서 미흡한 것이 있다.
칼빈은 성육신의 목적을 한마디로 죄인의 구속에 두고 있다. 존 칼빈, 앞의 책, 제2권 12장 4절 그것이 하
역사의 중간이 아니라 역사의 끝이다.
인간의 유로서의 개념 및 생활의 의미는 기독교가 지배함과 동시에 소멸해 버렸다. 거기서는 또한 인간은 신 안에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신은 그 자체 이 목표가 달성된 것이며 인류의 이 최고 목적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신은 각 개인에게 따로따로 나타
역사를 섭리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로 보았으며, 이 드라마는 종국적으로 계약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모든 절망의 원천들, 즉 이방세력의 지배 혹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로 끝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하느님의 통치는 BC 10세기에 이스라엘 왕으로 활동하였던 다윗 계열의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