⑶. 전쟁의 서막
이후 메메트 2세는 휘하 대군을 모두 결집하여 수도 아드리아노폴리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남하하였다. 이 때 동원된 병력은 세르비아 기병대를 포함하여 16만 투르크 자료에 따르면 정규병 8만과 예니처리 1만 5천, 부정규병 2만, 비전투원 수천 명이었다고 기술.
16만은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칼케돈에서 소집했던 종교회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시며, 진정한 하나님이시자 진정한 인간이시며 … 혼란이나 변화나 분열이나 분리가 없는 두 본질로서 … 한데 모여 한 위격을 형성하셨다 … ”고 고백하였다.
1. 제2
1.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동방정교회의 자치 독립 교회들의 명예 수장으로, 국가나 민족이라는 경계선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전 세계적으로 3억 명의 동방 정교회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이다. 공식 직함은 ‘새로운 로마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
콘스탄티노플)이었다. 동방 교회는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수 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한 논쟁에 휘말렸다. 이집트와 동방 교회의 다른 지역에서 칼케돈 종교회의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제 5차 회의가 열린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제 5차 회의)
칼케돈 종교회의
콘스탄티노플 감독 네스토리우스의 주장, 그리스도 안에서 양성의 연합을 강조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시릴의 주장, 마지막으로 보다 깊은 사색에서 주장한 강력한 신인 양성의 연합을 말한 콘스탄티노플의 노수도원장인 유티커스의 주장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아래에 451년 콘스탄티노플 인근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