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시릴의 주장, 마지막으로 보다 깊은 사색에서 주장한 강력한 신인 양성의 연합을 말한 콘스탄티노플의 노수도원장인 유티커스의 주장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아래에 451년 콘스탄티노플 인근에 있는 칼케돈에서 대종교회의가 열린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의지론 즉 기독론 논쟁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회의를 연구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과 기타 여러 교리논쟁을 정리하는데 중요한 일이며 가치가 있는 일이라 하겠다.
여기에서는 삼위일체논쟁과 기독론논쟁의 역사적인 측면과 여러 주장들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며 일어난 사건 중심으로 전개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죄용서와 생명의 은사와 그리고 타락의 권세로부터 놓임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들 역시 율법과 새 삶의 방법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빈번하게 거론 된 것은 의와 구원, 죄 등이다. 여기서 의는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사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행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451년 칼케돈 회의 사이에는 4세기라는 긴 세월이 걸쳐 있다. 4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문서화하기에 이른다.
종교개혁 이후 3세기 동안 칼케돈의 교리들은 계속해서 기독론 정통의 시금석이 되었다. 오늘날 정통과 이단
주장이다.’ ‘플라톤과 포르피리는 그 상충되는 의견을 서로 양보할 수 있었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으리라.’ 또한 ‘플라톤이나 라베오나 심지어 바로까지도 서로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다면, 부활에 대한 진정한 믿음에 공헌할 수 있었으리라.’ ‘하느님의 도성에 있을 영원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