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으나, 정통파 황제를 자칭하고 로마시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꺾어야 했고 312년에야 정식으로 황제 지위를 얻었다. 314년부터 로마제국 동부를 차지한 황제 리키니우스와 대립하였으나, 323년 고트인의 침입을 막아낸 후 리키니우스를 격파, 제국을 통일하여
로마도 자영농민이 중장보병으로서 군대의 주력을 이루고 있었는데 로마는 이들의 힘으로 지중해 전체를 통합하고 이어 포에니전쟁을 통하여 카르타고를 정복하여 서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북아프리카에 근거를 둔 해상제국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에 의하여 BC 9세기에 세워졌고, 특히 BC 6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의 공인, 전제 군주제의 확립, 콘스탄티노플로의 천도 등으로 비잔틴 제국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로마 황제이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문화를 통해 비잔티움제국과 서유럽의 중세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콘스탄티
기독교회로서는 존립 자체가 불투명했을 것이므로, 이러한 이민족이자 이교도를 타파해준 제왕들을 서슴없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옹립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를 수호한 성인으로서, 대제라는 명칭 또한 부여한 것이다.
이후의 역사적 기술에 있어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