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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그는 1687년(선조 20, 丁亥) 6월 21일에 한성부 연화방, 곧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해남(海南) 윤씨(尹氏)의 명문,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惟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종가에 혈통을 이을
- 조선 중기 이후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
<서원의 시대적 변화>
[초기]
-전국의 지방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선비들이 학문을 익힘
-선현, 항현을 제사지냄
-유교적 질서유지에 힘씀
-사림의 공론을 형성함
[후기]
-이익집단화의 심각함으로 발전
→1542년
Ⅱ. 사림의 계보
1. 이이-김장생-송시열
이이 - 김장생 - 송시열’을 연결한 것은, 이이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호서지역의 서인들은 김장생 - 송시열로 이어지면서 이이 중심의 성리학 이해와 절의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학파는 그와 동시대에 교류한 학
고산은 1587년(선조 20)에 서울에서 태어나 1671년(현종 12) 85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불우했으나 문학적으로는 뜻 깊은 한 평생을 살다 갔다. 그의 몸집은 작고 체질도 연약한 편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엄숙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가진 꼬장꼬장한 선비로서 평생토록 《소학》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