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은 함경북도 경원과 경상남도 기장으로 7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 일은 고산의 강직한 정치적 성품과 타협을 모르는 직선적 성격을 드러내게 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7년 후인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대북정권이 무너지자 고산은 비로소 유배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인조가 즉위하면서 정권
고산은 국문학사상 단가의 일인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 <산중신곡>은 물론 이 <어부사시사>는 최고의 금자탑으로 뽑힌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 … 중 략 … ≫
Ⅱ. 고산윤선도의 생애
윤선도(尹善道) 1587(선조 20)~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해남(
고산의 시문관도 퇴계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산은 충직이란 도덕적 주관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일평생 관통할 수 있는 강고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고산은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부자, 군신의 윤리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고 언제 어디에서나 선현과 선왕들의 유풍을
고산윤선도의 발자취, 보길도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시티, 청산도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소안도/신지도
행운의 청자 점토던지기 (유료)
기 간 : 2011. 7. 30(토) ~ 8. 7(일) / 9일간
장 소 : 청자촌 상설부스
내 용 : 점토를 이용 돌아가는 회전판을 맞추어 당첨되면 해당 상품을 지급
(2) 고산윤선도 선생의 삶의 발자취
윤선도는 선조20년(1587년)에 태어나 광해군, 인조, 효종대를 거치고 현종12년(1671)에 돌아가셨다.
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유래 없는 변란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당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서인이 득세한 시기였다. 그의 집안은 대를 이어 벼슬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