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로 한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즈음 일본은 열강의 일본의 접근과 중국의 아편전쟁의 굴욕을 묵도하면서 막번체제의 개벽을 통해 템포(天保)개혁 등을 시도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1853년 페리제독이 이끄는 미군함의 두 차례에 걸친 함포외교에 의해 미일화친조약(1854)
정책을 견지하였다.
북한은 로동 1호가 완성되기 이전부터 로동 미사일 보다 사정거리가 긴 대포동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생산에 서두른 것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확립되자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 위해서는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 정세의 안정, 유지를 필요로 하며 구체적으로 중국, 일본과의 양호한 관계 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지위향상과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일본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을 러시아는 자각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 실현을
, 아시아 주둔 미군 규모가 현재와 같은 10만명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전진 배치되어야 한다고 3차 보고서의 내용을 재확인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10만군 전진배치를 통해서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미국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정치의 문제로 확산되어 왔다. 동북아 국제질서는 세계 유일 패권국인 미국과,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면서 소련붕괴 이후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잠재적인 군사·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경제대국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한국과 러시아는 대내문제 해결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