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士器]로 양식에 있어서 함북지역과 기타 지역의 2가지로 구분되며, 유사성도 있으나 차이점이 더 많다. 황해안과 남해안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결이 고운 사질토(砂質土)에 활석과 석면을 보강제로 섞었고 무늬에는 대개 사단선무늬[斜單線文]․ 어골무늬[魚骨文] 등이
토기 없음
전기 : 원시 무 문 토기, 후기 : 즐문토기(빗살 무늬 토기)
무문 토기(무늬 없는 토기)
가야 토기 등
석기
타제석기
마제석기
청동제 무기
철제 농기구
생활형태
수렵, 어로, 채 집, 이동활동
농경의 시작(조, 수수), 정착시작
벼농사 시작
생산력 증대
사회형태
무리
토기
백제의 토기는 고구려와 신라의 토기와 뚜렷이 구별되는 부드러운 곡선과 정교한 문양, 그리고 때로는 회백색의 기표, 색조에서 오는 온건한 조형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흑도 같은 토기가 생산되기도 하였고 중기 이후에는 삼족기가 만들어졌고 후기에는 청록색 또는 황갈색의 유약을 바른 시
토기의 발명은 불의 이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토기는 인류의 정착생활과 농경생활과도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즉, 식료생산의 증대에서 오는 당연한 요청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에는 빗살문토기가, 청동기시대에는 무문토기가 가장 특징적으로 발견된다.
생산 활동, 농업 중심, 도구 제작 사용
- 구석기 시대 : 돌을 깨서 만든 도구 사용, 불을 사용.
- 신석기 시대 : 돌을 갈아서 만든 도구 사용, 농경과 가축 사육, 토기 사용
- 청동기 시대 : 구리 및 청동을 사용, 벼농사 시작, 정착 마을 형성
- 철기 시대 : 철을 사용, 농업 생산량 증가, 물물교환
② 중세